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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의 신고로 불태워진 에곤 쉴레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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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5. 21:105,077 읽음

에곤 쉴레와 그의 자화상

1890년 오스트리아의 북동부 툴룬 역의 역장이었던 아버지 아돌프 쉴레와 어머니 마리 사이에서 에곤 쉴레가 태어났습니다. 에곤 쉬레는 역장을 하던 아버지의 주변에서 마을 풍경과 기차를 그리며 자신의 재능에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에곤 쉴레가 자신을 본받기 바랐던 아버지는 그가 그림에 너무 장시간 그림을 그리거나 하면 스케치북을 찢어버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15세 때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를 대신해 그를 보호해줬던 어머니와 삼촌이 그의 설득에 의해 예술 학교로 진학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예술 학교에 진학한 그는 여전히 조용하고 부끄럼 많은 그림밖에 모르는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그림 실력은 언제나 인정받아 추천을 통해 그를 더 전통적인 예술 학교로 보내졌는데 그곳에선 상당히 보수적인 선생과의 마찰로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영향을 받아 작업한 듯한 <서있는 여인>과 <추기경과 수녀>

하지만 그곳에서 그는 구스타프 클림트와 만나게 되어 그를 스승으로 여기며 따랐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도 친절하게 그의 멘토 역할을 해주며 에곤 쉴레의 그림을 사주기도 하고 그림 모델을 알선해주고 전시회에 참여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발리를 모델로 한 그림들
<크루마우의 오래된 집>

쉴레는 구스타프 클림트가 소개해준 모델 발리와 사랑에 빠져 연인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비엔나의 환경에 싫증을 느껴 함께 남부 보헤미아에 있는 작은 도시로 이주했지만 에곤 쉴레가 어린 모델들을 고용하고 누드화를 그리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 마을 사람들이 그들을 쫓아 냈습니다.

<녹색 드레스를 입고 분홍 리본을 한 소녀>(좌), <올려진 스커트를 입은 검은 머리 소녀>

그들은 다시 비엔나의 서쪽에 있는 노이렝바흐 이주해 작은 스튜디오를 차렸지만 에곤 쉴레는 여전히 어린 모델들을 고용하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어린아이들을 스튜디오로 불러들이면서 그의 스튜디오는 안 좋은 소문과 함께 빈곤층 소녀들이 모이는 아지트가 되었습니다. 그가 두 번째로 이주한 마을의 주민들도 그의 생활방식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의 모델로 고용했던 아이와 마을 주민들의 신고로 체포되어갔습니다.

<누워있는 두 여인> 시리즈들

그의 죄명은 어린 소녀들을 유혹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쉴레가 체포된 뒤 스튜디오에 있던 그의 그림들도 포르노적 성향이 강하단 이유로 그림 수백 점을 압수당했습니다. 쉴레는 감옥에 갇히게 되고 재판을 받았지만 어린 소녀를 유혹하고 유괴한다는 죄목은 무죄 처분 받았지만, 어린아이들이 접근할 수 있는 곳에 포르노적인 그림을 전시했다는 점은 유죄 판정을 받았습니다. 판사는 재판 사이에 그의 그림을 한 점 태우며 그의 죗값을 치르도록 했습니다.

<죽음과 소녀>

구속된 후 풀려났지만 그 후로 그의 삶은 평탄하게 흘러가진 않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따가운 주변의 시선을 받았고 1차 세계대전으로 징집되어 군 생활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군 복무 중에도 꾸준히 그림을 그려 베를린, 취리히, 프라하에서도 전시를 할 수 있었지만 1918년 유럽의 악몽 같았던 스페인 독감이 비엔나까지 퍼지며 그와 그의 임신한 아내에게까지 다가왔습니다. 전염병이 그들을 피해가는 행운은 이러나 지 않았고 같은 해 10월 28일 아내가 사망하고 3일 뒤인 31일 에곤 쉴레도 28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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