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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티첼리의 그림을 벌레 먹은 자국까지 위조했던 위조 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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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4. 18:227,274 읽음

<베일을 쓴 성모>

보티첼리의 그림 중 하나라며 등장한 <베일을 쓴 성모>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1930년, 유명한 컬렉터에 의해 25,000 달러라는 큰 금액에 구매되었습니다. 높은 경매가 덕분에 <베일을 쓴 성모> 그림은 그 출처의 진위를 의심할 틈도 없이 보티첼리의 그림이라고 인정받아왔습니다. 

컬렉터가 소장하는 동안은 <베일을 쓴 성모>는 다시 세상에서 잊혔다가 컬렉터가 세상을 떠난 후 이 그림을 런던의 코톨드 갤러리가 소장하면서 다시금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그림의 출처와 보티첼리가 그린 그림이라는 것의 진실에 있어선 의심할만한 여지가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실제로 작품이 탄생한 기원적 증거가 미비했음에도 런던에 도착한 그림을 본 감정가와 학자들은 어떠한 조사도 없이 그저 보티첼리의 걸작 중 하나라며 호평했습니다. 

<석류의 성모상>

하지만 처음으로 이 그림의 출처에 대해 의심을 제기했던 건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디렉터였던 '케니스 클락'이었습니다. 그는 <베일을 쓴 성모>는 그동안 보티첼리가 그렸던 그림들과의 어떤 '기술'적 차이가 있다고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케니스 클락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았고 그림의 진실은 다시 세상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잊혀 갔습니다.

닮았지만 다른 두 그림

하지만 다시 그림이 진짜 인지에 대한 의심을 받기 시작한 건 2차 세계대전 이후 그림의 보존 처리를 위해 재료적 성분 요소들을 자세히 분석하면서부터입니다. 보존가들은 성모의 로브 부분에 사용된 파란색 색상이 '프러시안 블루'란 안료라는 것을 밝혀 냈습니다. 이 안료가 중요한 이유는 '프러시안 블루'라는 안료는 18세기 초 개발되어 사용된 안료였기 때문입니다. 15세기 화가였던 보티첼리가 300년 동안 살아남지 않은 이상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만에 하나 보티첼리가 선구적인 안료 개발로 해당 안료를 개발해 사용했다고 해도, 보티첼리가 살아있던 15세기의 색상의 경우, 수작업으로 안료를 분쇄해 사용했기 때문에 안료의 입자가 상당기 거칠게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미경으로 안료의 입자를 분석한 결과 해당 그림이 사용된 물감의 안료 입자는 상당히 미세하게 분쇄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이는 기계를 통해 제조되는 상업용 안료의 특징이었습니다.

1470년대부터 1480년대 까지 그려진 보티첼리의 성모 그림

<베일을 쓴 성모>가 결국 위작이라 밝혀지면서 이 그림을 위조한 사람이 누구인지 사람들은 궁금해했습니다. 왜냐면 위조의 과정이 너무나도 정교했기 때문입니다. 위조의 방식이 얼마나 정교했냐 하면, 오래된 그림들은 세월의 흔적에 따라 색이 바래고 변조됩니다. 그런데 이 위작은 변색된 세월의 흔적까지 위조하기 위해 갈색 안료를 사용하여 의도적으로 이 변색 효과를 표현했습니다.

게다가 보티첼리가 살아있던 당시의 그림들은 캔버스 천이 아닌 나무판위에 그려졌었습니다. 때문에 오래 보관되다 보면 벌레들이 그 나무에 들어가 나무의 부분, 부분을 파먹는 일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런데 <베일을 쓴 마돈나>에 있던 벌레가 파먹은 자국을 확대해 분석한 결과 구멍으로 밀려들어간 물감들의 자국과 구멍의 경로를 보아 구불구불한 경로로 벌레가 나무를 파먹으며 들어간 자국이 아닌 못 같은 것을 밀어 넣어 만들어낸 가짜 구멍임이 밝혀 졌습니다. 

움베르토 준티의 초상화

19세기 사람 중 이 정도로 정교한 기술로 그림을 위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결국 위조 기술이 뛰어났던 19세기 화가 중 '움베트로 준티'를 이 그림의 주인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움베르토 준티는 시에나 미술대학교에서 강사로 일하며 위작 화가로 활동하다 1970년 세상을 떠난 19세기 화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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