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팝아트의 거장, 영화감독, 현대미술의 성인, 앤디 워홀을 수식하는 수많은 단어들이 있을 만큼 그는 특별했고 예술가로서, 사업가로서 다양한 일들을 해왔습니다. 그는 광고 예술을 배우고 디자이너로 일했던 경력을 살려 실크 스크린과 블라티드 라인이라는 인쇄 기술을 이용해 '대량생산'이라 어울릴법한 방식의 작품 생산 방식을 취했습니다.
그의 그런 작업적 특성 때문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팩토리'라 불렀습니다. 당연히 그의 팩토리엔 많은 사람들이 오갔고 그곳에선 여러 예술가들과의 협업과 관련된 의논이 오가거나 그의 여러 작품들이 생산되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여러 협업 제의가 들어왔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중 자신의 극본을 공연해줄 것을 요구하던 한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 이름은 '밸러리 솔라나스' 그녀는 1960년 뉴욕에서 막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던 인물입니다.
그녀는 극단적, 급진적이라 할만한 여성주의자였고 그가 워홀에게 공연해줄 것을 요구했던 극본의 내용은 젊은 매춘부가 주인공이었던 <Up Your Ass>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이었습니다. 그녀의 극본을 받은 워홀은 당시 외설을 이유로 자주 상영중지를 당했던 탓에 그녀의 노골적인 성적 연출이 경찰의 함정수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워홀은 당연히 그녀의 대본에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았고 워홀은 이 일로 자신의 흉부에 총알이 박히리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워홀에게 극본을 넘겨줬던 솔라나스는 이후에 대본에 대해 워홀에게 의견을 물었으나 관심 갖지 않았던 워홀은 잃어버렸다고 대답했습니다. 모욕감을 느꼈던 솔라나스는 대본을 잃어버렸다면 돈으로 물어내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 요구를 받은 워홀은 황당했겠지만 그녀에게 대본 값을 물어주는 대신 자신의 영화 <I, A Man>에 단역으로 출연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녀는 워홀의 영화에 출연한 것에 상당히 만족해했고 그녀의 극본으로 생겼던 불만은 이렇게 일단락되는듯 했습니다.
하지만 솔라나스는 자신의 극복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워홀과 그의 주변 동료들에게 자신의 극본을 사용해줄 것을 계속해서 요구했습니다. 그녀는 워홀을 통해 자신의 극본을 공연한다면 자신이 유명해질 테고, 자신의 극본도 유명해질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녀가 원했던 '남자 없는 세상'이라는 비전을 성공시킬 수 있을 거라 망상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요구를 받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솔라나스의 집착과 정신병적 망상은 심해져 갔습니다. 평소 벌이도 마땅치 않았던 그녀는 다른 작가들에게 먹을 것을 살 돈을 빌려달라고 했고 그 돈은 워홀을 향한 그녀의 앙심에 이용되었습니다. 총 한 자루를 구입한 솔라나스는 워홀의 팩토리로 향했습니다. 그녀의 헝클어진 모습에 팩토리 사람들은 이상한 낌새를 느꼈고 워홀을 만나러 왔다는 그녀의 말에 워홀은 오늘 오지 않는다고 둘러댔지만 그녀는 기다리겠다고만 답했습니다.
몇 시간이 지나 워홀이 나타났고 그녀는 워홀과 함께 팩토리로 들어갔습니다. 워홀은 대수롭지 않게 그녀가 화장한 것을 보고 그녀의 외모를 칭찬했고, 전화 벨이 울리자 전화를 받았습니다. 워홀이 전화를 받는 사이 솔라나스는 워홀을 향해 세 번의 총을 쏘았습니다. 두 발이 빗나갔지만 한 발이 워홀의 흉부를 관통했고 같이 있던 평론가에게도 총격을 가한 후 급탄 불량으로 총이 망가지자 그녀는 자신의 주소를 종이에 적은 뒤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워홀은 5시간의 긴 수술 끝에 목숨은 건졌지만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솔라나스는 같은 날 자수했습니다. 그녀는 구속되었지만 정신적 불안정을 인정받아 3년 형으로 감형 받았고 출두 이후에도 워홀에 대한 집착과 협박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결국 다시 체포되었고 정신 병동에 감금되고 맙니다.
솔라나스는 병원에 감금되어 있으면서도 워홀을 죽여야 한다고 계속해서 중얼거렸고, 이후에 워홀이 심장마비로 사망해 그의 죽음을 알리자 그 말을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1988년 솔라나스는 결국 자신의 망상에 갇혀 호텔방에서 쓸쓸히 죽었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비하인드스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