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황금빛 향연, 관능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은 클림트의 그림에 많이 붙는 수식들입니다. 그에게 있어 그런 '여성'은 가장 관심 있는 주제이기도 했습니다. 그 스스로도 "나는 그림의 주제로서 나 자신에게는 흥미가 없고, 다른 사람에게 흥미가 있다. 특히 여성에게."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그의 그림에 있어 여성이란 주제는 절대적인 것이기도 했습니다.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시리즈에 등장하는 여성은 클림트가 유일하게 두 점의 초상화를 그린 모델입니다. 클림트가 처음 이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그녀의 남편이었던 페르디난드 블로흐 바우어의 의뢰 때문이었습니다. 이 부부의 집안은 설탕 제조업과 은행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던 부유층이었고, 클림트와 오스트리아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후원가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부인의 아름다움과 부유함이 녹아든 두 그림은 나치 독일의 오스트리아 점령을 시작으로 긴 고난을 겪게 됩니다. 두 부부는 나치 독일의 오스트리아 진군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할 때 스위스로 피난을 떠났고, 그들의 막대한 재산들은 모두 오스트리아에 남겨져 있었습니다. 나치는 당연히 그들의 재산을 모두 압수했고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부인의 초상뿐만 아니라 의뢰를 통해 그려진 클림트의 다른 그림들까지 모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두 부부는 모두 나치의 몰락과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을 지켜볼 수 있었지만 자신들의 재산을 모두 돌려받는 것 까진 지켜보지 못한 채 피신해 있던 스위스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나치는 그들에게서 빼앗은 그림 다섯 점 중 세 점은 오스트리아 정부에 반납하고, 두 점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팔아 처리한 후였습니다. 하지만 추후에 남은 두 점까지 모두 오스트리아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림은 모두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문제는 그림의 본래 주인이었던 바우어 부부에게 돌아가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게다가 둘 사이에서는 자녀가 없었고, 생전에 자신들의 재산을 조카들에게 남기다는 유언을 한 상태였습니다. 조카들 중 가장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재산을 돌려받기 위해 힘썼던 건 '마리아 알트만' 이었습니다.
다행히도 그의 친구 중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강제로 빼앗긴 유대인들의 재산을 되찾는 일에 열성적인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덕분에 그들은 2000년이 돼서야 자신들이 빼앗겼던 재산을 돌려받는 소송을 진행할 수 있었고 그중엔 오스트리아 정부에서 소유하고 있는 이모의 초상화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은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았습니다. 마리아 알트만은 유대인 학살을 피해 미국으로 도망 와 오래전 미국 국적을 취득했었기 때문에 미국 법원에서 소송을 낸 상태였고 오스트리아 정부는 오스트리아 정부 소유의 재산이 미국 법원에서 판결하는 것을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4년이란 긴 시간 동안 미국 법원에서의 소송 문제를 두고 분쟁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 끝에 소송이 미국에서 진행될 수 있다는 판결을 받았고, 그로부터 2년이라는 긴 재판 끝에 2006년 1월, 삼촌과 이모였던 바우어 부부 소유의 그림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비하인드스토리
일하고 뭐하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