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앙리 마티스가 자신의 입으로 '야수파'란 미술 화풍의 소속감을 들어낸 적은 없지만 그가 사용한 화려한 색채 때문에 비평가들은 그를 야수파의 일원으로 소개해 왔습니다. 그와 그의 그림은 때론 아마추어스럽다거나, 어린아이 같은 그림으로 혹독한 평가와 홀대를 버텨야만 했습니다.
그런 냉혹한 미술계에서 그가 화가로서 살아남기 위해 택한 방법은 더욱 냉철하고 혹독하게 자신을 다스리며 인물 내면에 있는 '마음의 사물'을 표현하는 것을 연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그가 표현한 인물들은 모델이 됐던 사람들의 마음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려졌습니다. 당시 그림의 모델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마티스의 그림을 본 모델들은 그의 모델이 되어주기를 꺼려 했습니다. 모델들은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가 그대로 표현되길 바랐지만 마티스의 그림들은 그들의 기준에선 그렇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마티스는 자신과 아내, 딸과 아내를 모델로 그린 그림들이 많았습니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마티스 부인의 초상화(녹색 선)>나 <모자를 쓴 여인>도 그의 아내 '아멜리'가 모델이 되어준 그림이었습니다.
마티스의 아내 아멜리는 어쩌면 많은 화가들의 아내들 중에서도 '총명과 인내'의 아이콘이 될만한 여성이었습니다. 마티스와 아멜리는 1898년 몇 개월간의 만남 끝에 결혼했습니다. 29세였던 마티스에겐 젊은 시절 동거했던 여성과 낳은 마르그리트라는 딸이 있었고, 사랑이 담긴 로맨틱한 말보다 "당신보다 그림을 더 사랑한다"라는 냉정한 말을 뱉는 남자였지만, 26세였던 아멜리는 그의 그런 상황들을 모두 이해하고 마르그리트의 어머니이자, 마티스의 아내가 되어주었습니다.
결혼 후 해외여행 이곳저곳을 다니며 둘 사이의 결실로 두 아들이 태어났고 아멜리의 아내로서의 헌신과 마티스의 책임감은 나날이 강해져 갔습니다. 하지만 화가로서 이름을 막 알리기 시작한 마티스의 수익은 변변치 않았습니다. '야수파'라고 불리며 이름은 알렸지만 그림을 사겠다는 사람이나 새로운 그림을 의뢰하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생계의 어려움이 이어지자 마티스는 그림을 그만둬야 할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의 궁핍함을 해결한 것은 둘째를 임신하고 있던 그의 아내였습니다. 아멜리는 만삭의 몸으로 작은 모자 가게를 열고 가족들이 굶지 않도록 열심히 일했습니다. 아내의 희생으로 간신히 입에 풀칠할 만큼의 벌이를 유지하며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되면서 마티스는 다시 그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마른하늘에 단비처럼 화가로서의 벌이도 조금씩 나아질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연속된 출산과 모자 가게 운영에 몸이 상해버린 아멜리는 마티스의 수익이 나아지자 일을 그만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멜리는 가게 일을 대신해 아내로서의 역할을 다함과 동시에 마티스의 모델이 되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도 그렇듯 마티스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가 퍽 마음에 들진 않았습니다. 자신의 얼굴이 표현된 그림을 본 비평가들이 좋지 못한 말을 뱉어내기도 했고 자신을 모델로 그릴 때 마티스의 요구는 너무 까다롭기도 했습니다. 긴 시간 그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할 때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로가 쌓여만 갔습니다. 게다가 아내와 모델로서의 헌신 이후에도 따뜻한 말 한마디 없는 그의 태도에 적잖이 우울감이 퍼져왔습니다.
때문에 둘 사이에 갈등은 늘어만 갔습니다. 그런 둘 사이의 냉랭함에 조금이나마 온기를 가져다준 것은 말 표현이 서툴렀던 마티스가 아멜리에게 그려준 <대화>라는 그림이었습니다. 이 그림은 당시 마티스가 연구 중이던 비잔틴 장식화의 양식을 차용해 그린 그림입니다. 마티스는 이 그림을 아내에게 선물하며 "이 그림처럼 당신을 대했다."라며 사과의 말을 전했습니다. 그저 일과 중 자신과의 조금이라도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으면 했던 것뿐인데 남편의 머릿속과 눈은 언제나 그림을 향해 있었습니다. 사과의 말도 서툴렀던 마티스는 그제서야 그림을 통해 아내와 마주 볼 수 있었습니다. 서툴지만 노력했던 마티스의 표현 방법 때문이었는지, 아멜리의 인내와 이해심 덕분이었는진 모르지만 둘의 결혼생활은 40년이 넘게 이어졌고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함께 묻혔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비하인드스토리
일하고 뭐하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