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네는 물 위에 편안하고 아름답게 떠있는 '수련'을 연작으로 우리에게 익숙하고 유명하지만 그의 가난했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은 사실 많지 않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그림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한 만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화가가 그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그림에 그의 삶이 녹아든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림의 이면의 가치를 바라볼 수 있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곤궁했던 클로드 모네와 그의 아내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모네가 태어났던 집안은 사실 그렇게 가난한 집안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선박과 식료품 사업으로 부족함 없이 모네와 가족들을 먹여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 그의 아버지는 당연히 모네도 자신의 사업을 물려받고 이 일에 종사하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어린 모네는 화가가 되고 싶었고,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뜻에 반하는 아들 모네에게 엄격하고 냉담하기만 했습니다. 때문에 그의 아버지에게 있어 모네는 모난 자식이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언제나 그의 꿈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지원으로 그림을 그릴 수 없음을 느낀 그는 캐리커처를 그려 팔아서 돈을 모았고, 그 돈으로 파리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의 그런 의지만큼이나 그의 그림 실력은 뛰어났고, 행운의 여신도 그의 편에 서있는 듯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그의 첫사랑이 시작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25살이었던 모네는 모델로 일하는 7살 차이의 십 대 소녀 '카미유 돈시에'를 만났습니다. 모델과 화가라는 둘의 관계는 연인으로 발전해 부부가 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모네는 사랑하는 연인 카미유를 모델로 남긴 그림 <녹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을 통해 살롱에서 극찬을 받았지만 그런 행운을 가져다준 아들의 연인을 아버지는 달갑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겨우 혼자 생활할 수 있을 만큼의 지원을 받고 있던 모네는 그 지원금마저 끊길 위기에 놓이자 아내와의 관계를 숨기고 떨어져 살아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1867년 둘 사이엔 이미 아들이 생겼고, 궁핍한 생활 속에 아이까지 생겨 그들의 생활은 점점 더 힘들어져 갔습니다. 게다가 가난 속에 태어난 아이와 산모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아버지가 결국 그들의 관계를 눈치채 버린 탓에 그나마 모네 가족의 생활을 유지시켜 주었던 아버지의 지원금마저 끊겨버렸습니다.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모네는 겨우 액자 값밖에 되지 않는 싼 가격에 자신의 그림을 파는 등의 수모를 당해야만 했습니다.
이후 모네는 여러 후원가를 찾아 전속 화가 활동을 하는 등으로 가족을 보호했지만, 그의 젊은 시절떄 처럼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를 후원하던 후원가마저 파산하면서 그가 더 이상 편하게 작품 활동을 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와중에 둘째 아들 미셸이 태어났습니다.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세상에 태어나야 할 아이였지만 그들의 궁핍한 생활 때문에 그렇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아내 카미유마저 출산 중 제대로 된 보호화 치료를 받지 못한 탓에 건강이 악화되어만 갔습니다. 1879년 9월, 둘째 아들이 태어나고 일 년이 지나 카미유는 결국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모네는 떠나보내는 아내에 대한 슬픔에 잠겨 동료 화가 피사로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카밀이 한마디라도 불평했더라면 오히려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모네는 그런 아내의 곁에 비탄에 잠겨 <임종을 맞은 카미유>를 남겼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비하인드스토리
일하고 뭐하니?
